선재문화답사(보성지역)

 

2015년 선재문화답사(3)

<보성 차문화와 구비문학>

일자: 4월12일(둘째일요일)

장소: 보성차밭(차박물관), 열화정,

벌교홍교, 득량만(구비문학,강동마을민요).

출발: 부산진역앞 오전 7시

회비: 4만5천원(중식제공)

 

(일정표)

07:00 부산진역 앞 출발

10:30 보성차밭(차박물관)

12:30 보성식당

14:00 열화정(들차회)

15:30 득량만

16:30 벌교홍교, 부용교

17:30 부산으로 출발

21:30 회향

 

보성차밭(차박물관)

전남 보성차밭이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 방문 시 꼭 가 봐야할 곳 50선’에 선정됐다.

CNN은 “대한민국의 40%정도 되는 녹차가 보성의 차 밭에서 자란다”며 “무성한 녹차 밭은 드라마나 광고 또는 영화의 촬영지로 애용돼 왔으며 사진작가들의 명소로도 알려진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 “보성 차밭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끝없이 펼쳐진 녹차 밭 때문”이라며 “매해 5월에는 녹차 축제가 열린다”고 덧붙였다.

보성차밭은 지난해에만 311만 9000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관광명소로 사계절 내내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참새 혀 같은 연둣빛 잎이 나오는 봄 차밭도 좋지만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순백의 차 꽃이 핀 차밭이나 눈 덮인 차밭도 운치가 있어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열화정

중요민속문화재 제162호. 일각대문과 ㄱ자형의 누마루집으로 이루어진 정면 4칸, 측면 2칸 정자이다. 위치는 아름다운 분위기를 간직한 마을 뒤, 깊숙한 숲 가운데 자리하며 강골마을의 공동소유이다. 조그마한 실개울을 따라 올라가다 동향하여 일각대문이 서고 그 뒤에 마당을 지나 정자가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한다.

정자는 간살이가 세로칸은 맞걸이로, 가로칸 구들부분은 전퇴구조로 하였는데, 뒤쪽으로는 헛기둥을 일렬로 세워서 헛퇴를 달아내었다. 평면구성은 가로칸 복판 2칸을 구들로 하여 아랫방과 윗방으로 하고 세로칸 2칸은 누마루가 된다.

가로칸 앞퇴는 툇마루가 시설되었고, 구들 아래퇴에는 구들에 불을 지피기 위한 굴뚝공간이다. 아랫방 뒤는 골방이고, 윗방과 누마루 뒤퇴는 누마루가 만들어졌다. 누마루의 앞과 양측면에는 쪽마루를 내밀어서 계자각 난간을 시설하였다. 집은 자연석 바른층쌓기의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하며 높은 덤벙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굴도리 아래에 장여를 받치고 소로를 끼워 수장(장여)모양의 창방을 보냈다. 중도리는 장여만 받쳤으며 사다리꼴 판대공으로 지지되었다.

들보는 네모꼴로서 모를 죽인 정도이고 굽은 부재를 사용하였다. 지붕은 팔작이다. 마당 앞에는 아담한 일각대문·연못, 정원에는 벚·목련·석류·대나무 등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전통적인 우리나라 조경의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득량만 (구비문학)

구비 문학은 기록 문학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기록 문학과 함께 오늘날까지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구비 문학과 기록 문학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나라마다 달라서, 거의 구비 문학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문학의 범위를 기록 문학만으로도 사실상 큰 지장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국문학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구비 문학과 기록 문학을 아울러 발전시켜 온 문학이다.

 

구비 문학은 말로 전해지는 문학이라는 의미에서 구전 문학(口傳文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구비 문학이라는 용어를 택한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구비’라는 말의 어원은 비석에 새겨 놓은 것처럼 오래도록 전해 온 말을 뜻한다. 돌에다 새긴 비석보다 말에다 새긴 비석이 더욱 진실되다는 생각에서, 옛 사람들이 ‘석비(石碑)’에다 빗대어 ‘구비’라는 낱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또한 구비는 ‘구전심비(口傳心碑)’를 줄인 말이다. 말로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마음에다 새긴 것처럼 절실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그런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결국, 구비 문학은 단순한 구전이 아니고, 절실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연을 일정한 형식이나 구조를 갖추어서 나타내는 문학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구전되는 것 중에서 설화·민요·무가·판소리·민속극·속담·수수께끼만을 구비 문학이라고 한다.

구비 문학을 민속 문학(民俗文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민간전승인 민속을 전승 방식으로 분류하면, 물질 전승, 행위 전승과 함께 구비 전승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민속을 그 구성요소에 따라 나누면, 민속 공예, 민속 음악 등이 있듯이 민속 문학도 있다.

 

구비 문학을 유동 문학(流動文學), 표박 문학(漂泊文學), 적층 문학(積層文學) 등으로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구전되면서 거듭 창작되기 때문에 그 모습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거듭 창작될 때마다 내용이 누적되어 간다는 특징을 들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구비문학은 특정인이 어느 때 창작해 글로 정착시킨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유동적이고 표박하고 있으며 적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비 문학은 구연되는 현장에서 존재하는 문학이다. 현장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구비 문학의 작품은 두 가지 개념의 복합체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유형으로서의 작품은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며, 특정 시기의 사정만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을 기억했다가 누가 어느 시기에 구연하는 개별적인 작품인 각 편(各篇)은 구연자 자신이 지금 내놓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그 작품은 유형으로서의 보편성과 각 편으로서의 특수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런데 구연은 혼자서 즐기자는 것이 아니어서 청중이 필요하며, 청중이 구연 내용에 관여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면 청중을 자신이 뜻하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한다. 이런 의미에서 구비문학은 공동의 것이면서 또한 개인의 것이다.

한편, 구연을 할 때는 생활상의 필요성과 관련된 일정한 상황이 주어진다. 모내기를 하면서 모노래를 부르고, 일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긴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구연 내용은 상황에 의거하면서 동시에 상황을 넘어서기도 한다. 기능적인 민요라고 해서 기능 수행에 꼭 필요한 사설로만 엮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두루 종합해 보면 구비 문학은 보편성과 특수성, 구연자와 청중, 자기 표현 의지와 상황 사이의 긴장된 관계에서 존재하는 가변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구비문학은 국문학의 저층을 이루어 왔다. 구비 문학은 기록 문학이 없이도 존재하지만, 기록 문학은 구비 문학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생겨날 수 없었다. 한문이 전래되기 전의 국문학은 온전히 구비 문학이었다. 그 중에서 건국 신화 또는 건국 서사시라 할 수 있는 것이 고대 문학에서 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구비 문학이 국문학의 저층이라 함은 구비 문학이 민중의 문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민중은 좁게는 생산 활동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넓게는 한문으로 이룩된 상층의 문화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생산 활동과 구비 문학의 관계는 민요를 통해 잘 나타난다.

민요는 원래 농사를 짓고, 길쌈을 하고, 고기잡이를 하는 등의 일을 하면서 행동을 통일하고 흥을 돋우기 위한 노동요로 시작되었다.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유희요나, 의식을 거행하면서 부르는 의식요라도 직접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민중만의 노래로서, 노동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민요는 일하는 사람의 의식을 나타낸다.

이들은 상층 문화와도 접촉을 가지면서 노래나 놀이를 생활 수단으로 삼았으므로 유식한 문구를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불만을 표현거리로 삼으면서 뜻하는 바가 단순하지 않은 작품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구비 문학은 다른 자료를 통해서는 거의 엿보기 힘든 하층 민중의 의식을 알아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의의가 있다. 또한, 외래 문화가 상층을 통해서 수용될 때 온통 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는 민족적 저력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구비 문학은 소중하다.

구비 문학의 위기는 근대화가 농촌 지역에서까지 진행되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농사짓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농업 노동요마저 지속되기 어려운데다 전파 대중 매체가 새로운 흥미거리를 제공하게 되어 스스로 노래부르고 이야기할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

판소리나 탈춤 같은 것은 도시로 진출했으나 새로운 창작은 막혀 버렸다. 무가는 무당이 불신되면서 그 명맥이 위험하게 되었다. 민요와 설화 중 설화는 전승 상태가 비교적 나은 편이나 앞으로는 대부분 그냥 사라지고 말 것이다.

 

<득량면 민요> 오봉리 강동마을 □ 상여 소리 에~이 어허 에~이 어허 에~이 어허 관암보살 관암보살 청록 어찌다 관암보살 무정허네 염라대왕이도 관암보살 극락세계가 한번가시면 관암보살 극락산천이 건너간산이 관암보살 챙경 잊지는 못하고 관암보살에헤이 어~허 에헤이 어~허 에헤이 어~허 수정수를 잊어버려 야속허니 무정허~네 그렇게도 또다시 무정허니 북망이로구나 찬양루를 떠나가누나 에헤이 에헤이 에헤이 갈꺼나 멀어서 못오누나 어~허 왜이가리 어이갈꺼나 황성천리길 어~너 왜이가리 어~너 왜이가리 쑥대머리 적막옥방에 어~너 왜이가리 만고상산에 산신산이가 어~허 왜이가리 자진석황 그누구가 어~너 왜이가리 백발귀신 그누구가 어~너 왜이가리 장항목판을 산천꽃이 어~너 왜이가리 나무애미타불 나무애미를어허 넘처 어이갈까 어이가리 어~너 넘차 어화너 넘차 귀신현용 천자리에 너화너 넘차 유람하고 어느멘고 어화너 넘차 건성제가 떠나가네 어화너 넘차 구경산천 떠나가네. 어화너 넘차 지고 떠나지나가네 어화너 넘차 삼십홀로어화너 너화너 너화너 너화너 하여야만 염라대왕 애야 끝에상을 애야허니 처량하지 처량하네 나무애미타불

[언덕에 올라갈 때 부르는 노래]

관음보살 천지재고 애절하네 석양산곱게 정토정산 천지재고 고성재화 임성천하 대장공세 화천봉공 극락세계 읍성천보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벌교홍교

보성 벌교 홍교(寶城 筏橋 虹橋)는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아치교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홍교는 벌교천 위에 걸쳐진 돌로 만든 무지개 다리로 전체길이 27m, 높이는 약 3m, 폭 4.5m 내외이다.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1729년)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아 사람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을 중요한 보시로 꼽고 있다.

이 홍교는 영조 13년(1737년)과, 다시 헌종 10년(1844년)에 고친 바 있다. 지금의 모습은 1981-1984년까지의 4년에 걸쳐 보수하여 원형을 찾은 것이다.

한국에 남아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돌다리이다. 홍교가 놓이기 이전에는 뗏목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다고 하는데 벌교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화두에 대하여

화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청화 큰스님

 화두(話頭)란 것도 어디서 나왔는가 하면, 중국 송나라때 나왔습니다.
화두를 지금 놔야 한다는 당위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불자님들도 깊이 생각하십시오.

소홀히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화두를 자기 할아버지가 했다든가,금생에 자기 스승이 했다든가,
또는 전통적으로 우리 종단에서 했다든가 하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인습적으로 묵수(墨守)해서 덮어놓고 따라갈 그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입니다. 정보화 시대는 지적인 정보를 가지고 정사(正邪)를 따져야 합니다.
비판해서 가려야 합니다.
화두라는 것은 중국 송나라때 대혜종고 스님이 비로소 정형화를 시켰습니다.
또 송나라 때도 다 화두를 한 것이 아니라, 대혜종고 스님 일파에서만 화두를 정형화시켜 유도했습니다.
그 당시도 저사(抵死)해서 화두를 반대한 스님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는 화두없이 잠자코 마음을 관조 하자는 조동종의 천동정각(天童正覺)이었고, 또 하나는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아미타불 넉자 화두를 해라 하시고 나선 분은 대혜종고 스님과 같은 시대의 진헐청요(眞歇淸了)스님 이였습니다.

 진헐스님은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아미타불 넉자 화두(四字名號)를 해라, 아미타불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의 본래면목이기 때문에 또 우리 마음의 본래 자리를 깨닫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니까,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의심만 주로 하는쪽이 아니라 부처님을 일백퍼센트 신뢰하는 아미타불 화두를 하라 하면서, 아미타불 화두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송나라를 지나 명나라 때가 되었습니다. 명나라 때는 송나라 때보다 고승이 훨씬 많이 나왔습니다.
바로 화두를 한 그 파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화두를 반대했습니다.

고승들의 종파는 같은 화두파였는데, 그 분들은 다 화두를 반대했습니다.

 운서주굉(雲捿株宏)스님 감산덕청(敢山德淸)스님
지욱우익(智旭우益)스님 자백진가(紫柏眞可)스님,
이 네분이 명나라 때 사대 고승입니다.
사대 고승이 다 한결같이 염불 쪽에다 역점을 두고서 불교를 창도하신 분이란 말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어찌하여 화두 아니면 참선이 아니다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송나라 때가 한국으로 치면 고려 때에 해당합니다.

당시 대혜종고 스님이 이끄는 세력이 제일 강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법을 배울 때 그 중 세력이 제일 강한쪽에 가서배우려고 하겠지요,

그래서 그 화두하는 쪽에 가서 배워 왔습니다. 그때는 마침 한국은 고려 말엽으로 그후새로운 정치세력인 이씨 조선이 서고, 이조 오백년 동안에는 고려때 불교의 잘못이나, 부패한 과보로 배불(排佛)이라, 유교인들에게 핍박을 당해서 스님들이 도성 안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불교가 발전 할수 있겠습니까. 중국은 원나라,명나라,청나라 때 불교가 가장 왕성했습니다.
불행히도 명나라 때 불교가 우리나라에 못들어왔습니다.

 설상가상 으로 일제 강점기 삼십육년간 이나 또 팔일오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제대로 발전을 못했습니다.

 어떤 스님네는 화두를 한번도 안해보고 화두 아니면 참선이 아니다 고 합니다. 한국 선방의 모습이 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선방에서도 화두 아니면 참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달마스님이 한 것도 아니고,
석가모니가 한 것도 아니고,
육조대사가 한 것도 아니고,

지금 참선의 교과서 같은 육조단경에도 화두란 말은 한마디 없습니다.

욕심내려놓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히치 하이킹(승차요청)을 했더니
조수석에 국회의원이 앉아있고,
깜짝 놀라 운전석을 보니
대통령이 앉아있었다.

소설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우루과이에 거주하고 있는 ‘헤랄드 아코스타’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에 출근했으나
신분증 기한 만료로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더위를 피해 히치 하이킹을 시도했고,
관용차 한 대가 그를 태워줬다.

차 안에 들어선 헤랄드는
깜짝 놀라고 만다.

운전석에는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이,
조수석에는 부인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상원의원이 있었다.

헤랄드는 그때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대통령이 나를 차에 태워줬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하니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이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대통령 부부는 매우 친절했다.
그날 하루 동안 비록 일하지는 못했지만,
이 짧은 여행은 더없이 소중하고 유쾌했다”

자신의 월급 상당수를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진
호세 무히카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다.

지난 5년의 재임 중에 받은 월급의
약 6억 원을 기부했고,
이 중 4억3천만 원은
서민들을 위한 주택 건설 사업에 사용됐다.

올해 초 신고된 재산은 약 3억 5천만 원인데
이 중 1억5천만 원은 농장이고
나머지는 약간의 현금과 트랙터 2대, 농기구,
1987년형 오래된 자동차 한 대 등이다.
이 중 농장은 부인 소유다.

그는 호화로운 대통령 관저 대신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을 느끼기 위해
여전히 농장에서 지내고 있다.
그가 기부하는 이유도
평범한 시민들의 평균 소득에 맞춰 살기 위해서다.

또, 지난해 아랍의 부호로부터
대통령의 오래 된 차를
100만 달러에 사겠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그는 제안을 거절했다.

이 사실이 화제를 모으자 그는
“내가 타는 차에 큰 관심을 두지 않기 바란다.
모든 자동차에는 가격이 붙어 있지만,
삶에는 가격이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인간의 삶의 문제에 더 많이 고민하라는 뜻이다.

– VINGLE / 뉴스와 이슈에서 / 김지영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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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히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 살아가는 가치! 가슴에 짠~합니다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2015-02-16]

“보살 마하살이 집착과 속박이 없는 마음으로 회향하되 세간과 세간법을 분별하지 않으며,

보리와 보살을 분별하지 않으며,

보살행과 뛰어나는 도를 분별하지 않으며,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을 분별하지 않으며,

중생을 조복하거나 조복하지 않음을 분별하지 않으며,

선근과 회향을 분별하지 않으며,

자신과 타인을 분별하지 않으며,

보시하는 물건과 보시 받는 사람을 분별하지 않으며,

보살행과 등정각을 분별하지 않으며,

법과 지혜를 분별하지 않는다.”

-화엄경-

그릇이론

그릇 이론 

그릇 비우기: 비움을 통한 자기정화

수행을 향한 첫걸음은 참회입니다. 그릇에 어떠한 물건이 이미 가득 채워져 있

다면, 더 이상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듯이 내 마음의 공간도

이미 번뇌 덩어리로 차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릇 채우기: 발원

참회와 하심을 통하여 마음이 비워진 후에는 발원을 해야 합니다. 발원은 자기

전환의 시작입니다. 업생(業生)에서 원생(願生)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의도적으

로 방향을 설정해서 과거의 업을 벗어나 창조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릇 키우기: 발원에 의한 자기 확장

참회를 통해 비운 그릇에 발원을 채움으로써 자기전환을 하는 것입니다.

작은 마음에 안주해있던 스스로를 바꾸어 커다란 큰 그릇(큰마음)으로 대치하

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지식과의 만남이 절대적입니다.

선지식이란, 내 마음을 열어주는 모두가 선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릇 깨뜨리기: 수행을 통한 자기 확인

그릇을 아무리 키운다해도, 결국 그릇이 존재하는 한, 안과 밖이 있습니다.

나와 남이 있고, 선과 악이 일어납니다. 궁극적으로 진리를 체득코자 한다면

시비분별이 사라져야 하고, 그릇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망념에 집착치 않고 자기의 성품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입니다. 분별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념이란? 만사를 생각지 않음으로써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의식적 자각’의 상태입니다’

 

그릇 만들기: 불성행(佛性行)

부처의 성품을 실천한다는 말입니다. 부처가 따로 있어 부처의 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행을 하는 자가 부처인 것입니다.

스스로가 불성을 지닌 신성한 존재임을 믿고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주인공이라는 말입니다.

관음신앙

관음신앙 [觀音信仰]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불함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하는 타력(他力)적인 불교신앙의 한 형태이다.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은 본신인 성관음(聖觀音)과 세상에 두루 나타나는 변화신인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준제관음(准提觀音)·천수관음(千手觀音)·마두관음(馬頭觀音)·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등 여섯이 있다.

중국에서는 255년 〈법화삼매경 法華三昧經〉이 최초로 한역된 이후 관세음보살과 관계된 많은 경전이 번역되었다. 이들 경전들이 세간에 널리 유포됨과 함께 관음신앙이 널리 퍼져갔다.

그중에서 관음신앙의 근본 경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법화경〉 보문품(普門品)이다. 여기서는 물·불의 재난이나 귀신·도적 등의 육체적인 어려움에서부터 탐·진·치 삼독(三毒)의 의지적 어려움 그리고 생남생녀(生男生女) 등 인간이 부딪히는 온갖 현실적인 고뇌에서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칭명(稱名)하면 관음이 즉시 그 음성을 관하고 모두 해탈을 얻도록 한다는 현세적 신앙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남북조시대에 부량(傅亮)이 〈광세음영험기 光世音靈驗記〉를 편찬한 이후 많은 영험기가 편찬되었으며, 십일면관음·여의륜관음·불공견색관음·천수관음·준제관음을 비롯한 많은 보살상이 조성되었다.

우리나라 관음신앙사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인 관음신앙과 함께 변화관음으로 십일면관음·양류관음(楊柳觀音)·천수관음이 있다. 본 얼굴 이외에 다시 11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십일면관음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자상(慈相) 3, 진상(瞋相) 3,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 3, 대폭소상(大爆笑相) 1, 불면(佛面) 1을 드러내보이는데, 이때 본 얼굴은 궁극의 지혜를 나타내며, 나머지 십일면은 방편을 나타낸다.

석굴암의 부조, 신라 국사(國師) 경흥(憬興)의 영험설화(靈驗說話) 등을 통하여, 이 관음에 대한 신앙이 옛날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양류관음은 버드나무가지와 감로병을 든 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법문을 듣는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흰옷을 입었을 경우에는 특히 백의양류관음(白衣楊柳觀音)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보살 그림 가운데 양류관음을 그린 것이 특히 많은 점으로 보아 이 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천수관음은 1,000개의 손과 1,000개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이때문에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로 불린다. 1,000개의 손과 1,000개의 눈은 모든 중생을 살피고 구제한다는 것을 뜻하며, 구원의 보편성을 상징한다. 〈천수경〉의 보급과 함께 천수관음에 대한 신앙은 우리나라 관음신앙의 대표적인 형태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은 삼국시대부터 성하였다. 많은 보살상과 영험설화를 그 증거로 들 수 있으며, 특히 〈삼국유사〉에 보이는 관음신앙에 대한 기록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밖에도 의상대사가 동해안 관음굴에서 〈백화도량발원문 白華道場發願文〉을 짓고 기도정진한 결과 관음보살을 친견하고서 낙산사(洛山寺)를 세웠다는 등 고승들과 얽힌 설화들을 통해서도 관음신앙의 성행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요원(了圓)에 의하여 〈법화영험전 法華靈驗傳〉이 편찬되었는데, 이는 당시에도 관음신앙이 매우 성하였음을 알려주는 좋은 예가 된다. 숭유억불정책에 의하여 불교의 교학적 발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조선시대에도 민간의 기복적 신앙으로서의 관음신앙은 단절되지 않았으며, 무속과 결합되어 생활 속 깊이 파고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기복적 신앙을 통하여 불교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불교의 이러한 기복적인 양상은 만해선사(卍海禪師)가 〈조선불교유신론 朝鮮佛敎維新論〉에서 그 개혁을 주장하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현대에도 관음신앙은 약화되지 않아서, 3대 관음성지(觀音聖地)인 동해안의 낙산사, 남해안의 보리암(菩提庵), 그리고 강화도의 보문사(普門寺)를 비롯, 영험 있는 것으로 알려진 관음기도도량마다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각 사찰마다 대부분 관음전(觀音殿)을 따로 건립하여 관음보살상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있거나, 중생들의 극락왕생을 돕는 아미타불의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봉안하고 있다.

 

 

지혜로움에 대하여 -서암-

법선 류상영(선재원장)


욕심이 일어나는 원인을 불교에서는

모든 잘못을 행하고 고통 속에 사는 그 근본원인을
탐욕(貪)·성냄(瞋)·어리석음(癡) 이렇게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몸과 마음을 해치는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탐욕심이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을
말하고 성냄이란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 등을 말하며 어리석음이란 바른 도리에 대한 무지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불길이 되어 수많은 고통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고통과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
살펴보고, 나름대로 판단하여 처신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때 좀더 일찍 내가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그때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좀 참았더라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었을 텐데..” 등등

이처럼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한 순간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더 큰 화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더 사정을 잘 알았다면 욕심만 더 부리지 않았다면
좀더 참았다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을 해결하기
힘겨운 상태로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의 독을 들이마시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점점 감당하기 힘든 수많은 잘못을 짓게 됩니다
물론 이 이외에도 많은 번뇌가 우리의 삶을 어지럽게 하지만

탐욕·성냄·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모든 번뇌가 일어나고

모든 고통과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근본이 되는 탐욕·성냄·어리석음을 열거하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강물이 원래 조그마한 샘물에서 시작하여

끊이지 않고 흐르면 시내를 이루고 마침내는 만경 창파를 이루게 되지만,

어떤 사람이 그 물줄기의 근원을 끊으면 모든 흐름이 다 쉬게 되는 것처럼

모든 악의 근본이 되는 탐욕 성냄·어리석음을 다스리면

그 모든 악이 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살펴보더라도
그 대부분이 탐욕·성냄·어리석음을 그 원인으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부처님이 남기신 말씀을 들어 봅시다
“여러 비구들이여,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번뇌도 많지만,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함이 없어 근심 걱정도 없다”

 

욕심을 적게 하기 위해서라도 힘써 닦아야 할 텐데

하물며 그것이 온갖 공덕을 낳게 함에 있어서랴

욕심이 적은 사람은 남의 마음을 사기 위해 굽혀

아첨하지 않고 모든 감관에 이끌리지 않는다
또 욕심을 없애려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서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고, 하는 일에 여유가 있어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열반의 경지에 들게 되는 이것을 가리켜

욕심이 적음(少欲)이라 한다.

만약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넉넉함을 아는 것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사 천상에 있을지라도
그 뜻에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한 듯하지만 사실은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듯하지만 사실은 부유하다


만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오욕에 이끌려
만족을 아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긴다
이것을 가리켜 지족(知足)이라 한다

이상의 말씀은 <<유고경>>에 나오는 말씀 입니다
모욕을 당하고 화내지 않기 어려우며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부딪쳐 오는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하여 잠시 여유를 가지고

그 것을 지켜본다면 합리적인 방법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상대방에게 좋지 못한 말과

모습을 보여 결국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때가 많습니다

뒤에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 원인조차도 사소한 것인데
그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험이
여러분도 있을 것입니다


가령 부부 싸움의 경우 어떤 일을 계기로 사건이 일어나면,

잠시 그 상황을 피하여 동네 한 바퀴 돌거나
하루 이틀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때문에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는가 봅니다

만약 쌍방에 서로 성을 내고 그 상황이 지속되면 이성을
잃어버리고 올바른 판단을 못한 채 감정으로 대하여
끝내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 버리게 됩니다
그것에다 자존심이 자리잡게 되면 심각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닙니다
일상 생활의 일이 모두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일에 감정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한 발짝 물러나면 새로운 방법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모욕을 당하고 나도 화내지 않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도 생각해 보면
자신을 알게 모르게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즉, “나” “나의 것”이라는 견해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먼저 성을 내고 더욱이 자존심을 내세운다면
일을 해결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부딪치는 상황에 대해 성을 내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하여 그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바로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의 수행
과정이자 수행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성낼 대상도 없고 성낼 주체도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우리는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번뇌 가운데 근본은 어리석음 입니다
탐욕과 성냄으로 인하여 그 어리석음이 증폭되어 나타나고
그 어리석음 때문에 탐욕과 성냄을 제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욕심을 내고 성을 냅니다. 이처럼 탐욕·성냄
어리석음 세 가지는 어떤 독(毒)이 다른 독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도와주는 경우처럼 서로 활발하게 일으켜 줍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음, 즉 무명(無明)을 근본번뇌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지혜를 얻는 것은 바로 모든 번뇌를
없애는 길인 것입니다
번뇌를 없애고 지혜를 얻는데 대해서 부처님께선 이렇게 말씀 하셨읍니다
“지혜가 있으면 탐착이 없어질 것이니, 항상 자세히 살피어
그것을 잃지 않도록 하여라
이것은 우리 법 가운데서 능히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수행자도 아니요
세속 사람도 아니므로 무엇이라 이름할 것이 없는 것이다
참 지혜는 생로병사의 바다를 건너는 튼튼한 배이고
무명 속의 밝은 등불이며, 모든 병든 자의 좋은 약이고
번뇌의 나무를 찍는 날이 선 도끼이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 들은 잘 듣고 생각하고
지혜로써 더욱 자신을 길러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혜의 빛을 가졌다면
그는 세상의 무엇이든지 육신으로 밝게 볼 수 있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도
결국 모든 번뇌를 끊고 평온한 상태에 이르고자 함 입니다

부처님 법을 배우는 불자로서 욕심을 내고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한 채 일을 꾸민다면
그것은 활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에 기름을 붙는 꼴입니다

선에 대하여

 

법선 유상영

禪에 대하여

禪이란
밖에서 얻어들은 지식이나
이론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것
철저한 자기 응시를 통해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무한한 창조력을 일깨우는 작업이다

그래서 선을 가리켜
지식이 아니라 체험이라고 했다
이 무한한 창조력이
사랑이라는 온도와 지혜라는 빛으로써

타인을 향해 발휘될 때
선은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선방 안에서만 통하는 선이라면
뒤주 속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다
뒤주 속에서 살아 나갈 길을 찾아

 

인간의 거리로 뛰쳐 나와야만
비로소 창조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

창백한 좌불은 많아도
살아 움직이는
활불(活佛)이 아쉬운 오늘이다

 

-법정-

                      

 

거짓된 나를 내려놓는 명상(冥想)

류상영(선재 원장)

참나(眞我)를 찾는 일에 있어 일반화된 수행은, 진정한 나(참나)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낱낱이 놓아 가는 수행방법으로 명상(冥想)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세상 사람이 ‘나’라고 여기는 것을 보면 네 겹 정도로 분석해 볼 수 있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인식의 주체, 마음, 몸, 그리고 자기 동일시한 대상의 내용인 ‘내 것’이라는 것이다. 나란 식주아(識住我), 심아(心我), 신아(身我), 경계아(境界我) 등 네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진정한 나를 알고자 나의 겉 부분부터 ‘어떤 것이 진정 나인가?’하고 물어보고자 한다. 양파의 핵심을 찾고자 껍질 한 겹 한 겹을 벗겨가듯…

경계아(境界我)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무수히 자기와 동일시하며 집착하고 있는 몸 밖의 것들, 가령 부모, 형제, 자녀, 남편, 아내, 동산, 부동산 등과 그 외 아끼는 물건들을 말한다.
그리고 명예 권력 등의 소중한(?) 나의 경계아! 그것들이 본질적인 나인가 하고 사유해보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 내려놓아야 한다. 쥐고 있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랑스런 자녀도 오히려 효과적으로 기를 수 있고, 재산이나 물질에 대한 관리도 효과적인 길이 보인다.

그러면 신아(身我) 그것이 나인가?
태생학적으로 몸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현미경을 동원해야 겨우 보이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의 합체로 시작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 후 어머니의 태내에서 열 달 동안 먹었던 자양분과 태어나서부터 성장하면서까지 인연 지으며 꾸준히 섭취해온 음식들, 그것들에 길들여져 현재를 유지하고 있는 집합이 이 몸이다.
그런데 그것을 부여잡고 ‘너는 나야!’ 하는 자가 있다면 딱하게 보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몸을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생명체들은 당연히 여기는 생각이다. 내일이나 모레, 아니 언제쯤인가 화장터에서 연기속의 한 줌 뼛가루로 흩어질 이 몸이 ‘내가 아니다’라는 것은, 옛 선지식들이 간절하게 설파한 내용이다. 당연히 내려놓아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늘상 마음이라고 하는 심아(心我) ‘그것이 나인가?’
심아, 그것은 생각과 감정의 조합과정일 뿐이다. 생각-감정-욕구-의지-생각-감정-욕구-의지가 기능적으로 무수히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마음이다.
예를 들면 -꽃 한 송이를 본다(인지작용:생각), 기분이 좋다(감정), 꺾어서 집에 꽃아 놓고 싶다(욕구), 꺾고자 한다(의지). 인생사 전반의 마음은 이런 식으로 활동한다.
이때 이 생각들이 나인가? 그렇지 않다. 그 순간 일어난 생각 기능일 뿐이다. 감정, 욕구, 의지도 마찬가지다. 마음이라는 것도 막연히 생각하면 무슨 실체가 있는 듯 하지만 잘 관찰해 보면 그런 식으로 몇몇 기능들이 얽혀서 일어날 뿐이다.
또 식주아(識住我)는 나일까?
산이 보인다. 무엇인가 보는 주체가 있으니까 그것이 산을 볼 게 아니냐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철학에서는 ‘아트만(Atman)’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의 개념을 만들어 내었다. 나무가 있고 돌멩이가 있다면 그것을 만든 자(창조자)가 있을게 아니냐는 생각이 ‘브라만(Braman)’ 이라는 형이상학적 신(神)도 만들어 내었다. 이에 인도에서의 석존의 역사적 출현의 의미는 그 두 형이상학 개념에서 벗어낫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새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듣는 무엇이 있는가? 아니다. 주체적으로 역할을 하는 ‘기능’이 있을 뿐 주체자라는 실체는 없다. 아트만이나 브라만과 같이, 알 수도 체험할 수도 없는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상상의 관념창고에 설정하려 드는 것은 취약한 유아기적 인격에서 볼 수 있는 ‘믿음 심리’이다. 믿어버림으로써 어떤 욕구를 성취하고 편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인간의 믿음의 심리이다.
이러한 심리가 인간에게 유익한 배설구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믿음 심리가 없다면 한강교를 건널 때마다 이상 유무를 검토해야 할 것이요, 이웃을 대할 때마다 흉악범이 아닌지 항상 살펴야 할 것이다. 많은 종교 교설이 믿음 심리를 전제로 하고 설파되는 것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너무도 뿌리 깊은 믿음 심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나는 존재한다’라는 믿음이다.
나는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 이것은 인간의 성장 과정에 단계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최종 단계의 성숙 과정에서는 그 철석같은 믿음을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석존의 보리수 아래 수행이 바로 그 과정이었다. 그 당연하고 자명한 듯한 ‘나’라는 실체가 ‘연기(緣起)로 관계된 기능’에 불과함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참나’ 운운 역시 관념의 허상이다.
‘나’라고 버티어 봄직한 인식주체가 ‘나’가 아니요 한갓 기능임을 조견(照見)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자유요, 해방이다. 행여 유물론에 경도되어 ‘무언가 허탈할 것 같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여인네가, 노망한 시어머니를 고생고생하며 30년을 시중들다가 시어머니가 죽자 문득 서운하더란다. 이를 관념적으로 사색하지 않고 명상적으로 관조하면 사색 과정에서 따를 수 있는 어떤 허탈감은 극히 일시적이고 작위적인 것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알아차리면 명상의 깊이에 비례하는 충만감이 바로 드러날 것이다.
간혹 ‘아! 그러면 마지막에 드러나는 그 자유감, 해방감 등이 ‘참나’ 이겠구나!’ 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도 끊임없이 변하는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거기다 이름을 붙이고 할 일은 아니다. ‘진아’이니 ‘참나’이니, 이름을 붙이고자하는 ‘믿음 심리’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보다는 명상을 통해 깨어 있을 일이다.
석존의 유언에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