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선재문화답사(2) – 삼국유사의 고장

일자: 3월15일(셋째일요일)

장소: 군위지역- 지보사 삼층석탑, 하곡리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 인각사.

출발: 부산진역앞 오전 8시

회비: 4만원(중식제공)

 

(일정표)

08:00 부산진역 앞 출발

10:20 군위 지보사(삼층석탑)

11:30 하곡리석조여래입상

12:30 점심(작은영토-054)383-9889부계면)

(한밤마을-상매댁, 남천고택, 대청, 대율리석불)

14:30 인각사(삼국유사 인문학토론)

17:30 부산으로 출발

20:00 회향

참가신청:
유상영 원장 – muni7011골뱅이hanmail.net / 공일공-2410-8200
이상미 단장 – leesealand골뱅이hanmail.net / 공일공-4728-5521
입금계좌 – 부산은행 101-2023-0751-07 선재 이상미

 지보사 삼층석탑

신라 말 고려 초 시기에 만든 3층 석탑으로 상륜부만 없을 뿐 거의 완전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 사찰에는 세 가지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 하여 지보사(持寶寺)라 했다하는데, 첫째 보물은 큰 가마솥이고, 둘째 보물은 오색흙이며, 셋째보물 은 맷돌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설로 미루어 보아 상당히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보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보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아담한 모습이다. 기단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구성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탑신에는 사자 모양의 동물상과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넣었다. 기단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별도의 판돌을 삽입하여 윗돌을 괴도록 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새겨두어 부처님을 모시는 방(감실)을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별도의 돌을 얹어 구성한 것으로, 밑면에 새겨둔 4단의 받침이 두꺼워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있다.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고려 초의 석탑양식을 잘 보여주는 당시의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곡리 석조여래입상(도 유형문화재 제 103호)

경북 군위군 군위읍 하곡리 산 32-1,

하곡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단층 맞배지붕 건물 속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불교행사에 쓰이다가 후에는 기도를 드리는 기원장소로 변하였다.

외형은 두 손을 외장하여 수인을 짓고 있는데 손가락이 잘렸으며 가슴에는 비스듬히 양어깨를 덮고 팔을 돌려 내려간 법의가 두 다리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동심원형의 무늬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옷 주름의 표현은 8~9세기에 유행한 통일신라불상의 옷 주름양식의 하나이다.

얼굴은 약간 살이 찐 편이며 높이는 1.93m, 어깨 폭은 0.74m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잃었고 부분적으로 손상을 입긴 했지만, 균형 잡힌 신체 및 얼굴과 머리, 옷 주름 등 각 세부표현은 당시의 불상양식을 잘 전해 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불상 중에 하나이다.

 

한밤마을-상매댁(남천고택)0.jpg

부계면 대율리(한밤마을)는 부림홍씨(缶林洪氏)의 집성촌으로 남천고택은 상매댁(上梅宅) 또는 쌍백당(雙柏堂)으로 부르며 의흥현(義興縣)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이다

본 가옥은 군위군내 부림홍씨 입향조(入鄕祖)인 홍노(洪魯)의 10세손 홍우태(洪寓泰)의 살림집으로 그 후 주손(冑孫)들로 이어지면서 수차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사랑채는 상량문에 의하면 현종2년(1836)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 가옥의 형태는 “흥(興)” 자형의 독특한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나, 해방 후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어 현재의 건물만 남아있고 대문채는 옮겨지면서 향이 바뀌었다.

현재는 “冂”자형의 안채는 실용성이 강조된 예로 건넛방과 고방 사이에는 헛간을 두어 아궁이를 설치하였고 상부에 다락을 만들어 출입은 대청에서 사다리로 오르게 하였으며 다락 앞에 툇마루를 설치한 후 난간을 두는 등 다른 거주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一“자형의 사랑채, 사당이 있고 주위에는 자연석 돌담으로 경계를 했다.

당초 1999년 03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7호 지정되었으나, 2013년 04월 08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변경 되었다.
(군위군청 관광 홈페이지)

대율리 대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62호)

이 대청(大廳)은 조선 전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임신 1632년에 중창된 학사이다.

신묘 1651년 (효종 2년)과 을유 1705년(숙종 31년)에 각각 중수된바 있으며, 중창 후 300년이 지난 임신 1992년에 건물을 완전 해체하여 부식재와 기와를 교체하고 계단을 보수하였다.

대청은 이 마을 돌담에 둘러싸인 전통 가옥들이 산재한 부림홍씨의 집성촌인 대율마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율리(한밤)마을은 전 지역이 통일신라시대에 사찰지였고, 이 대청은 종각자리였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시대변천에 따라 마을에서 필요한 서당으로도 사용하고 지금은 마을에 집회가 있을 때에는 집회 장소로도 이용하고 있다.

대율리석불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

대율리 석불입상은 대율리 전통마을(한밤 마을)의 외진 곳인 미륵댕이에 허리 이하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72년 대율사를 지으면서 발굴해낸 보물이다. 자연석의 윗면만을 편평하게 한 대좌위에 서 있는 이 불상의 높이는 265cm, 두상의 길이는 60cm, 어깨 폭 84cm의 5등신상으로 광배는 없지만 불신은 완전하다. 얇은 입술과 작은 입, 낮은 코 등은 얼굴을 다소 비만으로 보이게 하지만 통통한 볼 등은 원만함을 느끼게 한다. 귀는 길어서 어깨에 닿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전체적인 면에서는 큰 얼굴, 벌어진 어깨, 유난히 큰 손, 긴 하체 등이 균형을 깨뜨리고 있으나 당당하고 세련된 면모를 보이고 있는 9세기 통일신라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귀중한 석불입상이다. 1979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 받았고, 1989년에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인각사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의상스님에 의하여 창건되어 고려 충렬왕 10년에 왕명으로 크게 중건되고 토지를 하사하여 보각국사 일연 스님의 하안지지(下安之地)로 정한 절이다.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불교서적 100여권을 저술하였고,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두 번이나 열었다. 조선 숙종때 다시 중수(重修)되어 숙종 25년에 당시 의흥 현감 박성한에 의하여 증축되었다.

경내에는 중국 왕희지의 유필로 집자한 보각국사 탑 및 비가 보물로, 사찰주변은 사적지 제374호로 지정되었고, 석불상과 부도가 있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의하면 인각 마을의 내력은 기린이 노닐다가 뿔이 암벽에 걸려서 떨어진 곳이라고 하며, 화산의 화려하고 기품 있고 당당한 모습이 마치 기린의 형상을 닮았으며, 인각 마을의 위치가 그 뿔의 지점에 해당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구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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