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선재문화답사(3) – 보성 차문화와 구비문학

일자: 4월12일(둘째일요일)

장소: 보성차밭(차박물관), 열화정,

벌교홍교, 득량만(구비문학,강동마을민요).

출발: 부산진역앞 오전 7시

회비: 4만5천원(중식제공)

참가신청:
유상영 원장 – muni7011골뱅이hanmail.net / 공일공-2410-8200
이상미 단장 – leesealand골뱅이hanmail.net / 공일공-4728-5521
입금계좌 – 부산은행 101-2023-0751-07 선재 이상미

 

(일정표)

07:00 부산진역 앞 출발

10:30 보성차밭(차박물관)

12:30 보성식당

14:00 열화정(들차회)

15:30 득량만

16:30 벌교홍교, 부용교

17:30 부산으로 출발

21:30 회향

 

보성차밭(차박물관)

전남 보성차밭이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 방문 시 꼭 가 봐야할 곳 50선’에 선정됐다.

CNN은 “대한민국의 40%정도 되는 녹차가 보성의 차 밭에서 자란다”며 “무성한 녹차 밭은 드라마나 광고 또는 영화의 촬영지로 애용돼 왔으며 사진작가들의 명소로도 알려진 곳”이라고 소개했다.1294981191

또 “보성 차밭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끝없이 펼쳐진 녹차 밭 때문”이라며 “매해 5월에는 녹차 축제가 열린다”고 덧붙였다.

보성차밭은 지난해에만 311만 9000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관광명소로 사계절 내내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참새 혀 같은 연둣빛 잎이 나오는 봄 차밭도 좋지만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순백의 차 꽃이 핀 차밭이나 눈 덮인 차밭도 운치가 있어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열화정

중요민속문화재 제162호. 일각대문과 ㄱ자형의 누마루집으로 이루어진 정면 4칸, 측면 2칸 정자이다. 위치는 아름다운 분위기를 간직한 마을 뒤, 깊숙한 숲 가운데 자리하며 강골마을의 공동소유이다. 조그마한 실개울을 따라 올라가다 동향하여 일각대문이 서고 그 뒤에 마당을 지나 정자가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한다.

정자는 간살이가 세로칸은 맞걸이로, 가로칸 구들부분은 전퇴구조로 하였는데, 뒤쪽으로는 헛기둥을 일렬로 세워서 헛퇴를 달아내었다. 평면구성은 가로칸 복판 2칸을 구들로 하여 아랫방과 윗방으로 하고 세로칸 2칸은 누마루가 된다.20120924-2

가로칸 앞퇴는 툇마루가 시설되었고, 구들 아래퇴에는 구들에 불을 지피기 위한 굴뚝공간이다. 아랫방 뒤는 골방이고, 윗방과 누마루 뒤퇴는 누마루가 만들어졌다. 누마루의 앞과 양측면에는 쪽마루를 내밀어서 계자각 난간을 시설하였다. 집은 자연석 바른층쌓기의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하며 높은 덤벙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굴도리 아래에 장여를 받치고 소로를 끼워 수장(장여)모양의 창방을 보냈다. 중도리는 장여만 받쳤으며 사다리꼴 판대공으로 지지되었다.

들보는 네모꼴로서 모를 죽인 정도이고 굽은 부재를 사용하였다. 지붕은 팔작이다. 마당 앞에는 아담한 일각대문·연못, 정원에는 벚·목련·석류·대나무 등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전통적인 우리나라 조경의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득량만 (구비문학)



구비 문학은 기록 문학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기록 문학과 함께 오늘날까지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구비 문학과 기록 문학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나라마다 달라서, 거의 구비 문학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문학의 범위를 기록 문학만으로도 사실상 큰 지장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국문학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구비 문학과 기록 문학을 아울러 발전시켜 온 문학이다.구비 문학은 말로 전해지는 문학이라는 의미에서 구전 문학(口傳文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구비 문학이라는 용어를 택한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구비’라는 말의 어원은 비석에 새겨 놓은 것처럼 오래도록 전해 온 말을 뜻한다. 돌에다 새긴 비석보다 말에다 새긴 비석이 더욱 진실되다는 생각에서, 옛 사람들이 ‘석비(石碑)’에다 빗대어 ‘구비’라는 낱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또한 구비는 ‘구전심비(口傳心碑)’를 줄인 말이다. 말로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마음에다 새긴 것처럼 절실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그런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결국, 구비 문학은 단순한 구전이 아니고, 절실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연을 일정한 형식이나 구조를 갖추어서 나타내는 문학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구전되는 것 중에서 설화·민요·무가·판소리·민속극·속담·수수께끼만을 구비 문학이라고 한다.

구비 문학을 민속 문학(民俗文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민간전승인 민속을 전승 방식으로 분류하면, 물질 전승, 행위 전승과 함께 구비 전승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민속을 그 구성요소에 따라 나누면, 민속 공예, 민속 음악 등이 있듯이 민속 문학도 있다.

 

구비 문학을 유동 문학(流動文學), 표박 문학(漂泊文學), 적층 문학(積層文學) 등으로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구전되면서 거듭 창작되기 때문에 그 모습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거듭 창작될 때마다 내용이 누적되어 간다는 특징을 들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구비문학은 특정인이 어느 때 창작해 글로 정착시킨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유동적이고 표박하고 있으며 적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비 문학은 구연되는 현장에서 존재하는 문학이다. 현장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구비 문학의 작품은 두 가지 개념의 복합체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유형으로서의 작품은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며, 특정 시기의 사정만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을 기억했다가 누가 어느 시기에 구연하는 개별적인 작품인 각 편(各篇)은 구연자 자신이 지금 내놓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그 작품은 유형으로서의 보편성과 각 편으로서의 특수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런데 구연은 혼자서 즐기자는 것이 아니어서 청중이 필요하며, 청중이 구연 내용에 관여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면 청중을 자신이 뜻하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한다. 이런 의미에서 구비문학은 공동의 것이면서 또한 개인의 것이다.

한편, 구연을 할 때는 생활상의 필요성과 관련된 일정한 상황이 주어진다. 모내기를 하면서 모노래를 부르고, 일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긴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구연 내용은 상황에 의거하면서 동시에 상황을 넘어서기도 한다. 기능적인 민요라고 해서 기능 수행에 꼭 필요한 사설로만 엮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두루 종합해 보면 구비 문학은 보편성과 특수성, 구연자와 청중, 자기 표현 의지와 상황 사이의 긴장된 관계에서 존재하는 가변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구비문학은 국문학의 저층을 이루어 왔다. 구비 문학은 기록 문학이 없이도 존재하지만, 기록 문학은 구비 문학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생겨날 수 없었다. 한문이 전래되기 전의 국문학은 온전히 구비 문학이었다. 그 중에서 건국 신화 또는 건국 서사시라 할 수 있는 것이 고대 문학에서 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구비 문학이 국문학의 저층이라 함은 구비 문학이 민중의 문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민중은 좁게는 생산 활동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넓게는 한문으로 이룩된 상층의 문화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생산 활동과 구비 문학의 관계는 민요를 통해 잘 나타난다.

민요는 원래 농사를 짓고, 길쌈을 하고, 고기잡이를 하는 등의 일을 하면서 행동을 통일하고 흥을 돋우기 위한 노동요로 시작되었다.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유희요나, 의식을 거행하면서 부르는 의식요라도 직접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민중만의 노래로서, 노동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민요는 일하는 사람의 의식을 나타낸다.

이들은 상층 문화와도 접촉을 가지면서 노래나 놀이를 생활 수단으로 삼았으므로 유식한 문구를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불만을 표현거리로 삼으면서 뜻하는 바가 단순하지 않은 작품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구비 문학은 다른 자료를 통해서는 거의 엿보기 힘든 하층 민중의 의식을 알아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의의가 있다. 또한, 외래 문화가 상층을 통해서 수용될 때 온통 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는 민족적 저력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구비 문학은 소중하다.

구비 문학의 위기는 근대화가 농촌 지역에서까지 진행되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농사짓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농업 노동요마저 지속되기 어려운데다 전파 대중 매체가 새로운 흥미거리를 제공하게 되어 스스로 노래부르고 이야기할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

판소리나 탈춤 같은 것은 도시로 진출했으나 새로운 창작은 막혀 버렸다. 무가는 무당이 불신되면서 그 명맥이 위험하게 되었다. 민요와 설화 중 설화는 전승 상태가 비교적 나은 편이나 앞으로는 대부분 그냥 사라지고 말 것이다.

 

<득량면 민요> 오봉리 강동마을 □ 상여 소리 에~이 어허 에~이 어허 에~이 어허 관암보살 관암보살 청록 어찌다 관암보살 무정허네 염라대왕이도 관암보살 극락세계가 한번가시면 관암보살 극락산천이 건너간산이 관암보살 챙경 잊지는 못하고 관암보살에헤이 어~허 에헤이 어~허 에헤이 어~허 수정수를 잊어버려 야속허니 무정허~네 그렇게도 또다시 무정허니 북망이로구나 찬양루를 떠나가누나 에헤이 에헤이 에헤이 갈꺼나 멀어서 못오누나 어~허 왜이가리 어이갈꺼나 황성천리길 어~너 왜이가리 어~너 왜이가리 쑥대머리 적막옥방에 어~너 왜이가리 만고상산에 산신산이가 어~허 왜이가리 자진석황 그누구가 어~너 왜이가리 백발귀신 그누구가 어~너 왜이가리 장항목판을 산천꽃이 어~너 왜이가리 나무애미타불 나무애미를어허 넘처 어이갈까 어이가리 어~너 넘차 어화너 넘차 귀신현용 천자리에 너화너 넘차 유람하고 어느멘고 어화너 넘차 건성제가 떠나가네 어화너 넘차 구경산천 떠나가네. 어화너 넘차 지고 떠나지나가네 어화너 넘차 삼십홀로어화너 너화너 너화너 너화너 하여야만 염라대왕 애야 끝에상을 애야허니 처량하지 처량하네 나무애미타불

[언덕에 올라갈 때 부르는 노래]

관음보살 천지재고 애절하네 석양산곱게 정토정산 천지재고 고성재화 임성천하 대장공세 화천봉공 극락세계 읍성천보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관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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